작년 2월 퇴임식장에서 퇴임 교수 대표로 고마운 인사를 하면서, “사회에 나가면 그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리려 노력하며 살겠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스스로 하는 다짐이었다. ‘받은 사랑을 되돌리는 방법!’ 그리 많은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를 모색하고 있던 터라 뜻밖의 후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말 부끄럽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크나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독지가의 마음속에는 ‘제주어(제주방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라는 뜻임에 틀림없지만 이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지난 5일 ‘제주어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제주어연구소를 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言語權’이라는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언어 사용의 권리를 갖고 있으니, 이 언어권을 존중하자는 게 제주어연구소의 신조다.

잘 아는 바처럼,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의 쓰는 말’이라고 한다면, 방언은 쓰지 말아야 할 언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서 방언을 배척해야 할 말로 규정해 버리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방언을 쓰고 싶은데 어른들은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아직도 유교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는 게 자식의 입장이고, 어른들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게 아랫사람의 도리다.

어른들이 쓰는 말을 아이들에게 쓰지 말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방언’을 쓰면 무턱대고 촌스럽다, 무뚝뚝하다, 듣기 싫다는 부정적인 요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어른들도 어머니가 날마다 들려주며 배워준 방언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듣기 좋다, 씩씩하다, 믿음직하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방언을 가꾸고 보전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

제주어의 경우는 2010년 유네스코가 소멸위기의 언어로 분류해 전국적인 관심과 더불어 ‘제주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편이다.

아주 오래 전(2003년 11월)에 제주 지역 일간지에서 ‘구세주 제주방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KT는 고객 민원 상담을 담당하는 100번 콜센터를 조직 개편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인구가 적은 제주지역 100번은 광주지역으로 통합되는 작업이 추진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KT 제주지역본부에서는 전화 상담 녹취록, 지역방송 프로그램의 제주어 사용 현황 등의 자료를 제시한 끝에 본사로부터 제주 지역의 특수성이 받아들여져서 ‘제주고객센터’를 별도 운영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제주어를 사용하는 제주 사람들의 언어 사용 권리를 인정한 결과다. 제주 100번 콜센터를 광주지역과 통합해 언어 사용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더 많은 민원이 생기고, 의견 충돌이 빚어진다면 구조 조정의 의미는 퇴색할 것이라는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봐도 KT 제주지역본부의 판단은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언어 사용이 권리라고 해서 언어권을 무한정 풀어놓을 수는 없다. 일정한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규정을 지키고 원칙에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원칙을 새롭게 만들더라도 규범이나 원리에 맞게 만들어 써야 한다. 그래야만 말하는 사람과 말 듣는 사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공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언어로서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제주어만 소멸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도 이 범주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의 정신이고 마음이고 문화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쓰고, 우리가 이어받아 쓰는 언어 사용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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