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오롯이 제주어에 꽂혀 좌고우면 없이 연구자의 길을 걸어온 강영봉(66)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제주대 국어문화원장을 지내다 지난 2월 정년을 맞아 대학강단에서 물러났다. 

 

무수히 많은 제주어 관련 저서를 남겼지만 정년퇴임을 맞아 펴낸 책의 제목은 <제주어·제주사람·제주문화 이야기>(도서출판 각)다. 한편으론 지겨울법도 하건만 천생 '제주 바라기'다.

 

강 명예교수는 제주시 삼양2동 출신으로 제주제일고와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제주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경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평생을 제주어 연구에 진력해왔다. 

 

지난 10일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시 삼화지구의 한 카페에서 [제주의소리]와 만난 강 교수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람에겐 정리가 필요하다. 퇴임하면서 그동안 주고받았던 인정과 도리를 갈무리해 가는 중"이라고 최근 근황을 밝힌 강 교수는 “학교 안에 있을 때는 복장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편안했는데, (학교)밖에 있으니 오히려 더 신경 쓰이게 된다”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수십년을 몸담은 대학에서 퇴임한지 불과 한달 여 밖에 안된 그에겐 여전히 학교가 '안'이고, 나머지는 '밖'이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31년 동안 제주대학교에 학생을 가르쳐왔고, 자신도 국어국문학과·교육대학원을 다녔으니 학교가 되레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가 제주어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2학년 시절이다. “(제주어의) 어학이 다른 과목보다 학점이 잘 나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다소 실용적(?)인 이유다. 

 

이후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제주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돌아왔고,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장까지 맡아 자신의 역량과 에너지를 토해냈다. 

 

몽골에도 관심이 많아. 1998년 9월부터 1년 동안은 몽골국립대학교 연구교수도 지낸 경력이 있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국어순화분과 위원 등을 맡으면서도 그의 관심은 오직 제주어와 그 속에 깃든 제주문화였다. 

 

제주어는 단순한 남쪽 섬에서 사용하는 변방의 언어가 아닌 제주도민들의 문화와 삶, 그 자체라는 사실에 평생 천착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해 12월에는 제주도문화상 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 명예교수는 “국어사와 방언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제주어의 가치는 정말 소중하다. 독특한 변화과정을 거친 제주어는 ‘하나의 문화재’와 같다”며 "나아가 제주어는 제주도민들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민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1994년 <제주의언어>를 비롯해 매해 제주어 관련 저서를 펴내며 열정과 정력을 뽐내기도 한 강 교수는, 75세 이상의 제주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애구술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결과물이라고 꼽았다.

 

<생애구술사>는 75세 이상의 노인 한 개인의 삶을 제주어로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강 교수가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장을 역임하며 김순자, 김미진 연구원과 함께 제작했다. ‘노인 한 명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제주어와 제주의 역사는 남다른 가치를 지닌다. 

 

그런 가치를 최대한 살려내고자 <생애구술사> 한 권에 약 1년의 시간이 들여 완성했다.

 

강 명예교수는 <제주어·제주사람·제주문화 이야기>의 머리말에서 “한 주일의 강의가 모두 끝나는 목요일 오후 4시가 기다려지는 것은 ‘정리’할 때가 됐다는 신호였던 셈”이라며 그간 강의 부담이 적지 않았다는 나름의 고충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강 명예교수는 “학생들과 만나면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에너지를 받는다”며 일주일에 한번 만 대학원 수업을 맡고 있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교육자의 운명을 느낄 수 있다.

 

▲ 지난 2월 정년을 맞아 퇴임한 제주대학교 강영봉(66)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강 교수는 "제주도민들이 제주어를 더욱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그는 “제주도에서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제주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주어가 점차 모습을 잃고 그 속에 담긴 제주의 문화와 가치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핵심을 짚었다.

 

그렇기에 제주어를 ‘쓰지 말아야 할 방언’으로 인식해 사용을 기피하는 인식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사적인 영역에서는 제주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2언어(표준어+제주어) 습관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유년, 청소년들이 제주어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노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정책적으로 마련해 제주어의 전승을 꾀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자신도 도민들이 보다 쉽게 제주어를 말하고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앞으로 꾸준히 연구할 것이라는 포부를 보탰다. 

 

“정년퇴임은 출근시간이 1시간(학교)에서 1분(서재)으로 줄어든 것에 불과하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4년 정도 남았다”며 크게 웃어 보인 강 명예교수. 

 

학교는 떠났지만 자신의 연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여전히 열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 제주의 사람, 제주의 문화, 제주의 언어와 평생 동반자로 살아온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