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데미다

‘데미다’는 ‘물건을 겹쳐 올리어 더미를 짓다.’는 뜻을 지닌다. ‘물건을 겹치어 올려 지은 무더기’를 ‘데미’라고 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표준어는 ‘더미’이다. ‘더미’가 표제어로 올라 있는 것으로 보면 그렇게 하는 행위인 ‘더미다’도 표제어로 올라 있을 법 한데,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이나 ≪한국어대사전≫(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에는 북한어로만 되어 있다.

①시락 데미는 딘 시락막, 불치 데미는 딘 불칫막 경 아.(까끄라기 더미는 데는 ‘시락막’, 재 더미는 데는 ‘불칫막’ 그렇게 말해.)

②재기 못 가져갈 건 이제 눌곡, 리 가져갈 건 조그마썩 데며 두고.(재우 못 가져갈 건 이제 가리고, 빨리 가져갈 건 조금씩 더며 두고.)

③우잣 족앙도 아이 뒈여. 막 널러사. 촐 눌저, 검질 눌저, 낭 데미저.(울안 작아도 아니 되어. 아주 널러야. 꼴 가리랴, 검불 가리랴, 나무 더미랴.)

④밧 임젠 촐밧듸서 살아사. 경헤영 비 와가도 른 촐은 데미기도 허고.(밭 임자는 꼴밭에서 살아야. 그래서 비 와도 마른 꼴 더미기도 하고.)

예문 ①은 ‘시락막’과 ‘불칫막’에 대한 설명으로, ‘까끄라기 더미는 데는 ‘시락막’, 재 더미는 데’는 ‘불칫막’ 그렇게 말해.’ 하는 뜻이다. 곧 ‘시락막’은 ‘까끄라기를 쌓아두는 막’을, ‘불칫막’은 ‘재나 재거름을 쌓아두는 막’이다. 여기서 ‘시락’은 표준어 ‘까끄라기’에 대응하는 어휘로, 달리 ‘스락’이라 한다. ‘불칫막’의 ‘불치’는 표준어 ‘재[灰]’에 대응한다. ‘불치’ 대신에 ‘불껑, 불청, 불체, 제’라 한다.

예문 ②는 ‘가리다’와 ‘더미다’의 뜻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재우 못 가져갈 건 이제 가리고, 빨리 가져갈 것은 조금씩 더며 두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빨리 이동 가능한 것은 ‘더미는’ 것이고, 늦게 가져가는 것은 ‘가리는’ 것이다. 물건을 ‘가리는’ 경우는 ‘람지(이엉)’를 두르고, ‘주젱이(주저리)’를 씌워서 비나 눈을 피하게 한다. 여기서 ‘눌다’는 표준어 ‘가리다[積]’에 대응하는 어휘로, ‘가린 것’을 ‘눌(가리)’이라 한다. ‘재기’는 표준어 ‘재우[速]’에 대응한다.

예문 ③은 제주도 ‘우잣(울안)’은 널러야 된다는 이야기로, ‘울안 작아도 아니 되어. 아주 널러야, 꼴 가리랴, 검불 가리랴, 나무 더미랴.’ 하는 뜻이다. 여기서 ‘-저’는 ‘이것저것 두루 하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로, 대개는 ‘-저 -저’ 형으로 쓰인다. ‘우잣’은 ‘울[籬]+잣[城]’ 구성으로, ‘울잣>우잣’(‘ㄹ’탈락)의 과정을 거친다. ‘널르다’는 표준어 ‘너르다[廣]’, ‘촐’은 표준어 ‘꼴[芻]’, ‘검질’은 표준어 ‘검불’에 대응한다.

예문 ④는 가을철 꼴 베기에 대한 이야기로, ‘밭 임자는 꼴밭에서 살아야. 그래서 비 와도 마른 꼴 더미기도 하고.’ 하는 의미다. 농촌에서는 소나 말을 부려야 하기 때문에 추석이 지나고 하늬바람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꼴 베기를 걱정한다. ‘촐놉(꼴꾼)’을 빌려야 하고, 묶어 놓은 ‘촐뭇(꼴단)’이 비라도 맞게 되면 썩어버리니 꼴밭에 있으면서 꼴을 관리해야 한다. 꼴밭에 있는 ‘촐’은 집으로 들여와 보관해야 하니 비라도 내리게 되면 비 맞지 말라고 쌓아 둬야 한다. 그래서 임시로 ‘데며’ 두는 것이다. 바싹 마른 꼴은 집으로 옮겨 커다란 ‘촐눌(꼴가리)’ 두어 개를 ‘눌어둬야(가려둬야)’ 안심하고 겨울을 날 수 있다. 또 부자라는 말을 듣게도 되니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