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무눈

‘무눈’은 눈[雪]의 한 종류로, ‘내리자마다 바로 녹는 눈’을 말한다. ‘무눈’은 ‘물+눈’ 구성으로, ‘ㄴ’ 앞에서 ‘ㄹ’이 탈락하는 경우다. ‘솔+나무’ 구성이 ‘소나무’로 변화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무눈’에 대응하는 표준어는 없다.

①마당 젖언 어치냑 무눈 와난 셍이로고.(마당 젖어서 어제저녁 ‘무눈’ 왔었던 모양이로고.)

②비영 찌 오는 게 무눈.(비하고 같이 오는 게 ‘무눈’.)

③눈사게 험벅눈, 레기눈 잇고. 아이몰른눈. 또 무눈도 잇구나게. 무눈은 털어지멍서라 곧 녹아부러.(눈이야 함박눈, 싸라기눈 있고. 도둑눈. 또 ‘무눈’도 있구나. ‘무눈’은 떨어지면서 곧 녹아버려.)

④무눈도 눈비난게 무눈 오라가믄 감저눌 잘 더꺼사. 경 아녕 눌에 물 들민 감전 썩는 거난.(‘무눈’도 눈비니까 ‘무눈’ 내리면 ‘감저눌’ 잘 덮어야. 그렇지 않아서 가리에 물 들면 고구마는 썩는 거니까.)

예문 ①은 겨울철인데도 마당이 촉촉하게 젖었을 때 들을 수 있는 말로, ‘마당 젖어서 어제저녁 무눈 왔었던 모양이로고.’ 하는 뜻이다. ‘무눈’은 예문 ②에서 확인할 수 있듯, 비와 함께 오는 눈이기 때문에 겨울철 눈이 내렸다면 당연 하얗게 쌓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눈이 쌓이지 않은 것으로 보면 땅에 떨이지면서 곧 녹아 버리는 눈이 내려서 마당이 축축하게 젖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치냑’은 표준어 ‘어제저녁’에 대응하는 어휘로, 달리 ‘언치냑’이라고도 한다.

예문 ②는 ‘무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비하고 같이 오는 게 무눈.’이라는 대답이다. 이 예문으로 보면 ‘무눈’은 눈과 비가 함께 섞인 ‘눈비’에 가까운 뜻을 지닌다.

예문 ③은 눈의 종류를 물었을 때 들을 수 있는 대답으로, ‘눈이야, 함박눈, 싸라기눈 있고. 도둑눈. 또 ‘무눈’도 있구나. ‘무눈’은 떨어지면서 곧 녹어버려.’ 하는 뜻이다. 즉 눈 종류로 ‘함박눈, 싸라기눈, 도둑눈, 무눈’ 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몰른눈’은 ‘아이 모른 눈’이란 뜻으로, ‘밤사이 사람들 모르게 내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말한다. 눈 내린 사실을 아이만 모르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른다. 마치 도둑이 사람들 몰래 집에 다녀간 것처럼. 이런 도둑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예문 ④는 ‘감저눌’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예문으로, ‘‘무눈’도 눈비니까 ‘무눈’ 내리면 ‘감저눌’ 잘 덮어야. 그렇지 않아서 가리에 물 들면 고구마는 썩는 거니까.’ 하는 뜻이다. 여기서 ‘오라가다’는 ‘(눈이) 내리다’는 의미이고, ‘감저눌’은 ‘땅을 파서 만들어 겨울을 나기 위하여 고구마를 쌓은 가리’를 말한다. ‘감저눌’은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이엉으로 두르고 주저리를 덮어 가리처럼 만든다. 이 ‘감저눌’은 겨울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곳이기도 하였다. ‘더끄다’는 표준어 ‘덮다’, ‘눌’은 표준어 ‘가리’에 대응한다.

겨울은 눈이 내려야 제맛이다. 이 겨울, 정말이지 겨울답게 ‘아이몰른눈’이라도 내려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