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정걸다

‘인정걸다’는 ‘대개 무속에서,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신에게 돈, 옷 등의 재물을 바치다.’라는 뜻을 지닌 어휘다. 한글학회의 ≪큰사전≫이나 ≪우리말큰사전≫의 ‘인정쓰다(남에게 금전이나 물품을 주어 은근한 뜻을 보이다.)’에 대응한다(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서는 ‘인정 쓰다’로 띄어서 쓰고 구(句)로 처리하여, ‘남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어 따뜻한 정을 보이다.’로 풀이하고 있음). ‘인정걸다’는 ‘인정+걸다’ 구성으로, ‘인정’의 뜻만 밝히면 ‘인정걸다’의 의미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인정(人情)’을, ‘㉠사람이 본래 지닌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세상 사람들의 마음. ㉣예전에, 벼슬아치에게 몰래 주던 선물’의 뜻을 지닌 어휘로 설명하고 있다. “인정 시난 울어지는 거주, 인정 엇엉사 눈물이랑마랑,(인정 있으니 울게 되는 것이지, 인정 없어서야 눈물은커녕.)”, “엇인 사름이 인정은 하.(없는 사람이 인정은 많아.)”, “요센 인정 엇덴덜 아.(요새는 인정 없다고들 말해.)” 등에서 ‘㉠본래의 감정이나 심정’, ‘㉡따뜻한 마음’, ‘㉢세상 사람들의 마음’ 등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인정걸다’의 ‘인정’은 이 가운데 ㉣의 뜻으로 쓰인 경우다.

그러면 ‘㉣예전에, 벼슬아치에게 몰래 주던 선물’이라는 설명을 다른 사전에서는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

문세영(1938), ≪조선어사전≫: 행하, 선사.

한글학회(1957), ≪큰사전≫: 물건을 주어 은근함을 보이는 일.

이희승(1961), ≪국어대사전≫: 옛날, 벼슬아치들에게 주던 선물.

신기철 외(1974), ≪새우리말큰사전≫: 옛날, 벼슬아치들에게 은근히 주던 선물이나 행하, 뇌물 따위.

금성출판사(1991), ≪국어대사전≫: 옛날 벼슬아치들에게 은근히 주던 선물.

한글학회(1992), ≪우리말큰사전≫: 선물, 행하, 뇌물 따위를 일컫는 말.

북한사회과학원(1992), ≪조선말대사전≫: 전날에, 행하, 선물, 뇌물 같은 것.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2009): 예전에 벼슬아치들에게 주던 선물이나 뇌물.

이들 풀이에서 ‘예전에’라는 시기와 ‘선물’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큰사전≫의 “물건을 주어 은근함을 보이는 일”이라는 뜻이 제주도 무속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타나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신에게 바치는 돈, 옷 등의 재물’로 그 의미가 변화한 게 아닌가 한다. 위 사전 풀이에서 ‘행하(行下)’는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주인이 부리는 사람들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 ‘심부름을 하거나 시중을 든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예전에는’ 선물 또는 뇌물로서의 ‘인정’이 아주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익(李瀷)의 ≪성호사설≫(권11)의 ‘인정국’이 좋은 참고가 된다. ≪성호사설≫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인정의 나라[人情國]라 칭하는데 이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 뇌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음을 말함이다. 무릇 공납하는 물건도 뇌물 없이는 바치지 못하는데 이를 인정이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진상은 꿰미에 꿰고, 인정은 말 바리에 가득하다.’ 했으니 이는 사사로이 주는 뇌물이 오히려 공적으로 바치는 것보다 많다는 것이다.”라 기술하고 있다. 바라는 바를 이루려면 ‘인정’을 쓰거나 인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①그게 제비이주게. 제비뽑는 거라. 답 짝 틀리게 나오믄 훅 들러데껴 내불어. 궂이난에 인정걸렌 민 돈 그레 또 놓고 그추룩 허멍 제비뽑아.(그게 ‘제비쌀’이지. 제비뽑는 거야. 여덟 짝 다르게 나오면 훅 드던져 내버려. 궂으니까 인정쓰라고 하면 돈 그리 또 놓고 그처럼 하면서 제비뽑아.)

②만이 시믄 인정겁센 아. 꼼 쉽게 말믄 돈 올리라는 거지.(가만히 있으면 인정쓰라고 말해. 조금 쉽게 말하면 돈 올리라는 거지.)

예문 ①은 무속 의례 등이 끝나갈 때 좋고 나쁨을 쌀알의 수로 알아볼 때 들을 수 있는 말로, ‘그게 ‘제비쌀’이지. 제비뽑는 거야. 여덟 짝 다르게 나오면 훅 드던져 내버려. 궂으니까 인정쓰라고 하면 돈 그리 또 놓고 그처럼 하면서 제비뽑아.’ 하는 뜻이다. 이런 제비뽑기는 좋게 나올 때까지 진행되고, 좋은 수가 나온 쌀알을 그 주인공에 넘겨주며 침과 함께 삼키라고 한다. 간혹 어느 달 어느 달은 명심하라는 경계의 말도 덧붙인다. 여기서 ‘제비’은 ‘제비로 쓰는 쌀’로, 대개는 밥그릇에 담겨 있다. 또 ‘들러데끼다’는 표준어 ‘드던지다’에 대응하는 제주어로, 달리 ‘들러던지다, 들러쏘다, 들어데끼다’라 한다.

예문 ②는 ‘인정걸다’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말로, ‘가만히 있으면 인정쓰라고 말해. 조금 쉽게 말하면 돈 올리라는 거지.’ 하는 뜻이다. ‘심방’이 직접 신에게 돈을 올리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거는 인정’에 따라 운수가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