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르치다

‘가르치다’는 ‘물건을 뒤집거나 뒤집어진 것을 도로 뒤집어 바로 놓다.’는 뜻을 지닌다. 마뜩한 대응 표준어는 없다. 달리 ‘가르쓰다, 가리씨다, 가리치다’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①돌 일렁 깅이 잡아나믄 다시 돌 가리쌍 놓아사.(돌 떠서 게 잡았으면 다시 돌 뒤집어 바로 놓아야.)

②솟두껑 가르싸 놔근에 알로 불으멍 그 우의서 정기떡 지져나서.(소댕 뒤집어 놔서 아래로 불때며 그 위에서 ‘정기떡’ 지졌었어.)

③간 보난 심심헤신고라 혼차 화토 가리씨멍 놀암서.(가서 보니 심심했는지 혼자 화투 뒤집으며 놀고 있어.)

예문 ①과 ②는 ‘물건을 뒤집다.’는 의미로 쓰인 경우고, 예문 ③은 ‘뒤집어진 것을 도로 뒤집어 바로 놓다.’는 뜻으로 사용된 예다.

예문 ①은 ‘깅이(게)’나 ‘보말(고둥)’을 잡을 때 들을 수 있는 말로, “돌 떠서 게 잡았으면 다시 돌 뒤집어 바로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깅이’나 ‘보말’이 있음직한 돌이 보이면 돌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죽을힘을 다해 돌을 떠서 뒤집는다. 돌을 뒤집은 다음에는 발이 달린 게부터 잡고 난 뒤 돌바닥에 붙은 ‘보말’ 하나하나 떼어서 잡는다. 그리고 난 후 다시 그 돌을 원래 상태대로 뒤집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서식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일르다’는 ‘박혀 있는 것을 위로 들어 올려서 뒤집다.’는 의미로, 표준어 ‘뜨다’에 해당한다. 터앝에서 삽질할 때 “삽으로 일르다.”라 하는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예문 ②는 ‘정기떡’을 만들었던 이야기로, “소댕 뒤집어 놔서 아래로 불때며 그 위에서 ‘정기떡’ 지졌었어.” 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변변한 번철이 없었기 때문에 ‘솟두껑(소댕)’을 번철 대용으로 썼다. 번철 대용으로 쓰려면 당연 솥뚜껑의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게 뒤집어 놓아야 하니 솥뚜껑은 ‘가리싸진’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 지지기에 적당하게 바닥이 조금 옴쏙하게 들어간다. 여기서 ‘정기떡’은 ‘기름을 친 번철에서 메밀가루 반죽으로 전을 둥글넓적하고 얇게 지지고 거기에 무채나 팥소를 넣어 길쭉하게 둘둘 말아 만든 떡’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멍석떡, 빈, 빈떡, 빙, 빙떡, 영빈, 전기, 전기떡, 정기, 정기떡’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기, 전기떡, 정기, 정기떡’은 대개 제주도 동남부인 표선읍, 남원면에서 쓴다.

예문 ③의 ‘가리씨다’는 ‘뒤집어진 것을 도로 뒤집어 바로 놓다.’는 의미로 쓰인 경우로, “가서 보니 심심했는지 혼자 화투 뒤집으며 놀고 있어.” 하는 뜻이다. 화투패는 그림이 그려진 면이 위다. 혼자서 예문 ③과 같은 놀이를 하려면 우선 그림이 위로 향하게 해서 화투짝을 12개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난 뒤 12개 각각의 그림이 아래로 가게 해서 하나하나 늘어놓고 난 뒤 화투짝을 뒤집으며 1월부터 12월까지 짝을 맞추어 나간다. 이때 관건은 늘어놓은 화투짝이 무슨 그림이 그려졌는지를 모르는 데 있고, 그것을 뒤집으며 짝을 맞추는 데 묘미가 있다. 그러니까 예문 ③의 ‘가리씨다’는 ‘뒤집어진 것을 도로 뒤집어 바로 놓다.’는 의미로 쓰인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