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하시보다

‘하시보다’는 ‘남을 얕잡아 낮추어 보다.’라는 뜻을 지닌 어휘로, 표준어 ‘하시하다’에 대응한다. 이 ‘하시보다’는 한자어 ‘하시(下視)’와 ‘보다’가 연결되어 이루어진 어휘로, ‘보다’ 뜻의 한자어 ‘시(視)’와 고유어 ‘보다’가 겹치어 쓰이고 있다. ‘초가(草家)’를 ‘초가집’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 구성이다.

①내미린 낭에 눈 걸린덴 지 아녀게. 그게 하시보는 거라.(나무란 나무에 눈 걸린다고 말하지 않니? 그게 하시하는 거야.)

②아이렌 하시보지 맙서.(아이라고 하시하지 마세요.)

③육짓거덜, 우릴 섬놈일렌 하시봐.(육짓거들, 우릴 섬놈이라고 하시해.)

예문 ①은 ‘하찮은 것에 큰코다친다.’는 교훈을 이야기한 것으로, ‘나무란 나무에 눈 걸린다고 말하지 않니? 그게 하시하는 거야.’ 하는 뜻이다. 별거 아닌 나무라고 하다가 그만 그 나무에 눈이 걸린다는 말이다. 여기서 ‘내미리다’는 달리 ‘나무레다, 낭그레다, 내무리다, 냉기리다’라 하는데 표준어 ‘나무라다’에 대응한다. ‘지’는 ‘[曰]-+-지’ 구성으로, 그 기본형은 ‘다’이다. 만일 ‘내미린 낭에 눈 걸린덴 지 아녀게.’ 하면 그때의 기본형은 ‘다’가‘ 된다.

예문 ②는 보잘것없는 아이라고 깔보지 말라는 경계의 뜻이 들어있는 말로, ‘아이라고 하시하지 마세요.’ 하는 뜻이다. 곧 어리다고 하시하지 말라는 것이니, “애기업게 말도 들을 말 싯나.” 하는 말과도 뜻이 서로 통한다. ‘아이보개 말도 들을 말 있다.’는 뜻으로, 하찮은 사람의 말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문 ③은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하는 말로, ‘육짓거들, 우릴 섬놈이라고 하시해.’ 하는 뜻이다. 여기서 ‘육짓거덜’은 ‘육지 사람들’하는 뜻이다. ‘육짓거’는 ‘육지 사람’ 또는 ‘육지에서 들어온 물건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 예문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육지’라는 어휘는 임제(林悌)의 <남명소승>(1577)에 나오는데(12월 9일), “제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육지라고 한다.[洲人稱我國爲陸地])”는 내용이 그것이다. <남명소승>은 임제가 쓴 기행문으로, 그의 부친[임진(林晉]이 제주 목사로 있을 때인 1577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넉 달 동안 제주에서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임제는 황진이 무덤에 가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와, 기생 한우(寒雨)에게 지어 주었다는,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로 끝나는 시조의 지은이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