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벌초와 소분

‘벌초(伐草)’와 ‘소분(掃墳)’은 한자어이다. ‘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 즈음에, 조상 산소의 풀을 베어서 무덤을 깨끗하게 함’이란 뜻을 지니며, ‘소분’은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 조상의 산소에 가서 무덤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을 말한다.

원래 ‘소분’은 ≪태종실록≫(14권, 7년 9월 4일)의 “소분하는 법을 세웠다”, ≪문종실록≫(2권, 즉위 7월 17일)의 “부모에 대한 5년의 한을 참작하여 10년에 한 번씩 소분하는 하는 것을 허락하여 풍속을 후하게 하소서”, ≪매천야록≫(권1상)의 “시골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면 문과, 무과, 대과, 소과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집에 돌아온 날 잔치를 베푸는데 이 일을 도문(到門)이라 하고, 선영의 묘소를 알현하는 것을 소분이라 한다.” 등의 내용을 참고하면, ‘오랫동안 외지에서 벼슬하던 벼슬아치가 귀향하여 친부모의 산소에 가서 성묘하던 일’이나 ‘과거에 급제하여 선영의 묘소를 알현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①육지 아이덜토 왕 허곡 허민 이제는 난 벌초는 안헤여.(육지 아이들도 와서 하고 하면 이제는 난 벌초는 아니해.)

②적고지 헤영 강 올리는 집 싯고, 안 올령은에 벌초만 허는 집 십네다.(적꼬치 하고 가서 올리는 집안 있고, 안 올려서 벌초만 하는 집안 있습니다.)

③벌초엔도 허고, 소분이엔도 허고. 거 뜬 말. 벌초나 소분이나.(‘벌초’라고도 하고 ‘소분’이라고도 하고. 그거 같은 말. ‘벌초’나 ‘소분’이나.)

④친정 산도 소분도 나가 죽장 헷저, 죽장 헷어.(친정 묘도 벌초 내가 줄곧 했어, 줄곧 했어.)

예문 ①은 ‘늙신네(늙으신네)’가 집안 벌초에 대한 이야기로, ‘육지 아이들도 와서 하고 하면 이제는 난 벌초는 아니해.’ 하는 말이다. 이제는 육지에 있는 자식들이 내려와 벌초하기 때문에 나이 든 ‘나’는 벌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벌초는 아주 중요한 집안 행사로, 벌초 때가 되면 으레 육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도 내려온다. 사정이 있어 내려오지 못하는 경우, 집안에 따라서 벌금(?)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벌초 참여를 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벌초꾼’이 몰려다니는 집안을 보고 부러워하여, “실이실이헌 집안이로고” 하며 감탄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문 ②는 벌초 풍습에 대한 이야기로, ‘적꼬치 하고 가서 올리는 집안 있고, 안 올려서 벌초만 하는 집안 있습니다.’ 하는 뜻이다. 집안에 따라 묘제하 듯 제물을 차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적고지’는 표준어 ‘적꼬치’에 대응하며, ‘집’은 ‘집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문 ③은 ‘벌초’냐 ‘소분’이냐는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벌초라고도 하고 소분이라고도 하고. 그거 같은 말. 벌초나 소분이나.’ 하는 뜻이다. ‘벌초’나 ‘소분’이나 같다는 말이다.

예문 ④는 친정 벌초에 대한 이야기로, ‘친정 산도 벌초 내가 줄곧 했어, 줄곧 했어.’ 하는 뜻이다. 친정에는 벌초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출가한 딸인 내가 친정 벌초를 줄곧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분’은 음력 8월 초하루 즈음에 하는 ‘벌초’의 의미로 쓰인 경우이고, ‘죽장’은 표준어 ‘줄곧’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