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판치다

‘판치다’는 ‘이미 있는 대상을 본으로 삼아 그대로 좇아 만들다.’라는 뜻을 지닌 어휘로, 표준어 ‘본뜨다’에 대응한다. ‘판치다’는 ‘판(版)+치다’ 구성으로, ‘치다’는 ‘어떤 대상을 촬영기로 비추어 그 모양을 옮기다.’라는 뜻이매 표준어 ‘찍다’에 해당한다. 결국 ‘판치다’는 ‘판의 모양을 그대로 옮기다.’라는 뜻을 지니게 된다. 달리 말하면 문제지를 등사(謄寫) 또는 복사하는 것이며, 비석의 내용을 탁본(拓本)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판을 찍어내는 것이다.

①동전 우의 반지 놩 연필로  긁엉 떼어내민 동전이 판쳐져.(동전 위에 반지 놔서 연필로 살살 긁어서 떼어내면 동전이 본떠져.)

②족은아덜은 똑 아방 판친 거주. 아방 아덜이옌 아니허카 부덴.(작은아들은 꼭 아버지 본뜬 거지. 아버지 아들이라고 아니할까 봐.)

③절벤은 떡을 지름 르멍 동글락허게 멘들앙 두 개썩 부뗭[부쪙] 그믓 난 고운 판으로 똑똑 눌렁 멘들아. 게난 절벤은 판친 떡이주게.(절편은 떡을 기름 바르며 동그랗게 만들어서 두 개씩 붙여 금 난 고운 절편판으로 꼭꼭 눌러서 만들어. 그러니까 절편은 본뜬 떡이지.)

예문 ①은 초등학교 때 많이 했던 놀이 가운데 하나로, ‘동전 위에 반지 놔서 연필로 살살 긁어서 떼어내면 동전이 본떠져.’ 하는 뜻이다. 그 당시는 주로 HB 연필을 썼다. 좀더 진하게 하기 위해서 침을 바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4B 연필이 없었기에 손이 쉬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선명한가 하는 게 관건이었다. 여기서 ‘우의’는 ‘위에’, ‘’은 ‘살살’ 하는 뜻이다. ‘반지’는 일본 종이로, 뒤가 비칠 정도로 얇다. ‘똥종의’라는 마분지(馬糞紙)의 누렇고 두꺼운 것에 비할 바 아니다. 색깔이 흰 색이어서 ‘판치기’에는 그만이다. 거친 면을 동전 위에 놓고 매끌매끌한 부분을 연필로 긁으면 동전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예문 ②는 아버지와 작은아들이 ‘축엇이닮은(빼닮은)’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작은아들은 꼭 아버지 본뜬 거지. 아버지 아들이라고 아니할까 봐.’ 하는 뜻이다. 여기서 ‘족은아덜’은 표준어 ‘작은아들’, ‘똑’은 ‘꼭’, ‘아니허카 부덴’은 ‘아니할까 봐’ 하는 뜻이다. 이 예문은 “족은아덜은 축엇이 아방 닮앗주.” 또는 “족은아덜은 아방 축엇이닮아서.”라 해도 된다.

예문 ③은 절편에 대한 설명으로, ‘절편은 떡을 기름 바르며 동그랗게 만들어서 두 개씩 붙여 금 난 고운 절편판으로 꼭꼭 눌러서 만들어. 그러니까 절편은 본뜬 떡이지.’ 하는 뜻이다. 곧 ‘절벤’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끓는 물에 삶아낸 다음 잘 이기면서 반죽한 후 둥글게 만든 떡 두 개를 맞붙여서 절편판이라는 떡살로 찍은 후 참기름을 바른 떡’을 말한다. 그래서 “절벤 포부뜬 거 떼영 먹지 말렌. 뗑영 먹으민 어멍 아방 갈라산덴 헤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절편 맞붙은 거 떼어서 먹지 말라고. 떼어서 먹으면 어머니 아버지 갈라선다고 했어.’ 하는 뜻이다. 여기서 ‘절벤’은 표준어 ‘절편’, ‘지름’은 ‘기름’, ‘르다’는 ‘바르다’, ‘그믓’은 ‘금’, ‘판’은 ‘절편판(절편을 만들 때 둥그런 두 개의 떡을 붙일 때 쓰는 떡살)’을 말한다. ‘똑똑’은 표준어 ‘꾹꾹’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