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왁허다’는 “눈으로 보는 것과 관련하여, 빛이 가리어 너무 새까맣게 어둡다.”라는 뜻을 기본 의미로 한다. 나아가 듣는 것을 포함하여 마음, 기억 등 인식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기도 한다. 표준어에서는 ‘캄캄하다’를 ‘깜깜하다’나 ‘컴컴하다, 껌껌하다’ 등 자음과 모음을 바꾸면서 말맛을 달리할 수 있으나 제주어에서는 ‘왁왁허다’만 쓰인다.

①하늘이 왁왁허연 큰비 오람직허다.(하늘이 캄캄해서 큰비 올 듯하다.)

②왁왁헌디 어디 나가젠 헴시니?(캄캄한데 어데 나가려고 하니?)

예문 ①, ②은 ‘캄캄허다’의 기본 의미로 쓰인 경우다. ‘왁왁허다’는 부사 ‘왁왁’에 접사 ‘허다’가 연결되어서 이루어진 어휘임을 알 수 있다.

③데멩이 왁왁허연 아무 셍각도 안 남수다.(대가리 캄캄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④말귀가 왁왁헌 게 어둑어도 너믜 어둑어.(말귀가 캄캄한 것이 어두워도 너무 어두워.)

⑤손지덜 담아지난 귀눈이 왁왁허다.(손자들 몰려드니 귀와 눈이 캄캄하다.)

⑥세상 물정 아무것도 몰르는 왁왁이우다.(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캄캄이’입니다.)

⑦숨비어 들어강 숙데기믄 아지 일어나. 경허믄 왁왁이라.(숨 참고 들어가 쑤시면 앙금이 일어나. 그러면 캄캄이야.)

⑧장마가  이나 지믄 드럭쉬 일뤠, 건들마 일뤠, 왁왁이 일뤠, 산산이 일뤠 경 주. 어떵어떵 마지믄 경 여.(장마가 한 달이나 지면 ‘드럭쉬’ 일레, 건들마 이레, 왁왁이 이레, ‘산산이’ 이레 그렇게 말하지. 어찌어찌 장마가 지면 그렇게 해.)

예문 ③은 정신이 혼미함을, 예문 ④는 말귀가 어두운 것을 말한다. 예문 ⑤의 ‘귀눈이 왁왁허다’는 관용 표현으로,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함으로써 야기되는 결과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예문 ⑥의 ‘왁왁이우다’는 표준어로 ‘캄캄입니다’라 대역되지만, 여기서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의미한다. 일종의 ‘글방물림’인 셈이다. 예문 ⑦은 물속을 쑤시면 앙금이 일어나 캄캄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숙데기다’는 표준어 ‘쑤시다’에 해당하며, ‘아지’는 달리 ‘아젱이’라 하는데, 표준어 ‘앙금’에 대응하는 어휘다.

예문 ⑧은 장마 때가 되면 으레 듣는 말이다. 장마가 한 달이나 이어지면 반드시 ‘드럭쉬’ 이레, ‘건들마’ 이레, ‘왁왁이’ 이레, ‘산산이’ 이레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럭쉬’는 ‘장마 때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말하며, ‘건들마’는 장마 기간에 구름이 끼고 바람만 부는 일기이다. ‘왁왁이’는 ‘장마 때 비는 내리지 아니하고 짙은 안개가 이어지며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를 뜻하며, ‘산산이’는 ‘장마 때 이슬비보다 조금 굵게 산산하게 내리는 비’를 뜻한다. 그러니까 예문 ⑧은 장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드럭쉬’ 7일, ‘건들마’ 7일, ‘왁왁이’ 7일, ‘산산이’ 7일을 치러야만 장마가 끝난다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도체비고장’이라는 ‘말나리/참나리’도 진다. 그러면 어른들은 “도체비고장 지는 것 보난 마 가둔젠 허는 셍이여.”(말나리/참나리 지는 것 보니까 마 가두려고 하는 모양이다.)라 말한다.

장마 기간이라고 해서 비만 오는 것은 아니다. 장마 기간에 볕이 나면 “마 가운디[마 카운디] 벳난다.(장마 가운데 볕 난다.)”라 한다.